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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19. 경향신문, 손민정 교원대 교수 인터뷰 [엔카 아류라고? 음악인류학자가 말하는 ‘트로트의 가치’] 에 대한 문제제기

bero1966 2020. 5. 21. 22:18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대한민국 청소년 트로트가요제를 개최한다고 해서 그렇잖아도 기가 막히는 즈음에,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트로트가 엔카의 아류가 아니라 '한국 고유 음악 양식(스타일)'이라니! 더구나 경향신문에서 이러한 내용이 보도되었다니 무척 유감이다!
트로트가 엔카의 아류가 아니라고 주장을 하려면, 적어도 트로트의 어법과 엔카의 어법을 논하고, 그 차이점을 말하면서 해야 하는데, 기본적인 음악양식에 대한 논의도 없이, 자신의 주관적 경험과 감성에 '대중'이라는 이름을 얹어서 트로트가 한국 고유의 음악 양식이라고 주장하다니.... 어이가 없다.
이런 관점으로 한국음악교육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한국교원대학교에서 미래의 음악교사들을 가르치고 있다니 암담할 뿐이다.
대체 왜 갑자기 다들 트로트에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돌아가는가? 적어도 나라가, 교육기관이 앞장서서 이러면 안되지 않는가!
3.1운동,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온나라에서 친일잔재 청산을 외치던 게 불과 작년 일인데 단 1년 만에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올 수 있는가? 미스트롯을 히트시킨 TV조선의 승리인가?

 

손민정 교수는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1998년에 유학 가서 '락음악의 역사'라는 수업의 조교를 맡게 됐고, '한국의 음악'을 질문하길래 '트로트'를 틀어줬다, 그랬더니 무지 좋아하더라, 왜냐면 '다르기' 때문에.....
인터뷰 내용에 따라 순서대로 몇 가지 문제제기한다.

 

1. '락음악의 역사'라는 수업에서 학생들이 질문한 '한국의 음악'은 과목의 이름으로 보아 '한국의 락음악'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런데 '트로트'가 '락음악'인가? 둘은 엄연히 다른 장르이다.
2. 그 학생들이 무지 좋아해서 자신도 트로트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중이 좋아하면 '한국의 음악'인가? 비유하자면, 대중이 좋아하면 '오뎅'이 우리말이 되고, '어묵'이란 말은 없어져도 된다는 논리인가? '핑크'가 우리말이 될 수 있고, '분홍'이란 말은 필요치 않다는 이야기인가?
3. '트로트'가 박사논문의 주제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트로트를 '한국 고유 음악 양식(스타일)'으로 소개하다니, 그건 안될 말이다. 이렇게 주장하기 위해서는 트로트의 어법과 양식이 한국 고유의 것이라는 점을 먼저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트로트의 어법과 양식은 명백히 일본의 것이지 한국의 것이 아니다. 리듬도, 음조직도 일본의 것이라면 당연히 트로트는 엔카의 아류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후 따로 세세한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4. 트로트가 사랑 받게 된 이유는 대중의 정서와 취향, 요구를 잘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노랫말'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일제의 음악정책도 당연히 동력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사회문화적, 역사적 관점에 빈틈이 상당히 많다.
5. 디스코가 16비트, 락이 8비트라고 하였다. 16비트, 8비트는 4/4박자 구조의 리듬형으로, 디스코와 락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디스코도 8비트로 연주할 수 있으며, 8비트에도 락뿐 아니라, 트위스트, 보사노바, 폴카, 칼립소 등 다양한 리듬이 있다. 그리고 비트와 빠르기는 무관하다. 8비트가 16비트보다 빠를 수도 있고, 16비트가 8비트보다 느릴 수도 있다. 8비트냐 16비트냐는 1박을 2개의 8분음표로 쪼개느냐, 4개의 16분음표로 쪼개느냐의 문제이지, 8비트가 빨라져서 16비트가 되는 게 아니다. 이건 '리듬형'의 문제이다. 너무나 기본적인 개념의 문제인데....
6. 상실에 대한 아픔, 같이 경험한 아픔, 인생의 고통에 대한 아픔이 트로트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의 전통음악-민요, 판소리, 굿음악 등등-에는 물론이요, 전 세계의 민중들의 음악에는 이런 요소가 다 있다. 민중의 삶이 그러하기에 그들의 음악이 그러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트로트가 특별히 그런 면을 가져서 크게 사랑 ㅈ받았다는 것은 논리가 빈약하다. 즉 트로트가 다른 장르에 비해 대중의 사랑을 더 받게 된 이유는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이와 관련한 시대적 고찰의 보충이 필요하다.
7. 트로트의 향유층이 힘이 없어서 학문적으로 인정을 못 받았다고 하며, 이제 힘을 갖게 된 건 솔직한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초기에 트로트가 천박한 음악으로 치부되면서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은 단순히 힘을 갖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음악적 측면에서 기존의 장르를 넘어서는 예술성과 창의성을 가졌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판소리나 산조 또한 '힘 없는' 기층의 음악이었으나 그 높은 예술성과 독창성, 그리고 전통성으로 인해 일찌기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트로트는 '돈'이 되면서 힘을 갖게 된다.
트로트가 힘을 갖게 된 것을 "사회가 솔직해져서"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설명하는 것은 비학문적, 비논리적이다. 트로트가 돈이 안되었다면 주목 받을 수 있었을까? 상업자본주의와 음악문화의 관계를 역사적, 문화적 관점에서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이다.
8. 트로트는 '한국인이 근현대기를 살아오는 데 있어 지대한 공헌을 했고, 한국인이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가치는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나 트로트가 했다는 그 '지대한 공헌'과 비례해서 진짜 '한국 고유'의 음악들은 급속히 사라져갔다. 그것을 과연 참된 의미에서 '공헌'이라 할 수 있을까?
또한 그 '공헌'과 '선택'의 과정에서 '한국인의 자유'가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전반에는 일제의 음악정책이 '공헌'과 '선택'의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20세기 후반부터는 '연예기획사'로 대표되는, 음반 및 방송을 장악한 상업자본이 점차 대중의 기호조차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대중'은 실은 스스로의 선택의 자유를 온전히 보장 받은 적이 별로 없다고 볼 수 있다.
9. 트로트의 가치를 논한다면 무엇보다 '대중의 정서와 요구'를 잘 대변한 노랫말이 첫째라고 본다. <봄날은 간다>, <목포의 눈물> 같은 지극히 서정적인 노랫말로부터, <단장의 미아리고개>, <이별의 부산정거장> 같은 지극히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심경 표현에 이르기까지.... 이런 점을 간과하고 트로트의 가치나 힘을 논할 수는 없지 않을까.
10. 트로트를 '한국 고유 음악 양식(스타일)'이라고 주장했다는데 대해 한 마디 더. '음악'이라는 명사 앞에 '한국'이라는 낱말이 붙을 때는, 더구나 '고유'라는 낱말까지 붙을 때는 '대중'이 아니라 '정체성'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최소한 음악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리듬과 음조직이 '한국 고유'의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제발 좀 트로트에서 해방되자!
정광태씨는 정말로 몰라서 <독도는 우리땅>에 미야꼬부시음계를 썼고, <한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들>에서 일본 신파소설을 번안한 [장한몽]의 주인공 이수일과 심순애를 넣었다 치자.
정말로 '뭘 몰라서'!
그런데 서울대 음대를 수석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음악학자가 트로트를 '한국 고유 음악 양식'이라고 주장하다니, 이걸 '몰라서' 그랬다고 봐야 하나?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가?
과연 언제쯤이면 우리는 음악적으로 '한국인'이 될 수 있을까?
가슴 답답한 나날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5192000001&code=94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