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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악회와 김정희-신동일 / 정가악회와 만나다-김정희

bero1966 2012. 5. 25. 09:28

 

정가악회와김정희-신동일-hwp.pdf

 

정가악회와 만나다-김정희-hwp.pdf

 

이 글은 2008년 11월 21일 부암아트홀에서 열린, [정가악회 with 김정희-겨울하늘 기러기 날 듯] 공연 팜플렛에 수록된 작곡가 신동일님의 글과 나의 글이다. 공연의 주제는 북한의 음악을 소재로 한 창작곡들이었고, 북한의 토속민요와 은율탈춤 반주음악이 주요소재로 쓰였다. 연주곡목은 다음과 같다.

 

1. <기러기 날 듯>(초연) - 가야금, 대금, 해금, 양금, 장구

2. <서도피리산조-아용소리>(2007) - 피리, 장구    

3. <석양에 해는 재를 넘고>(초연) - 가야금, 장구

4. <떼 한 장에 벼 닷 말>(초연) - 대금, 피리, 거문고, 정주, 장구

5. <서도시나위>(2008) - 거문고, 대금, 해금, 피리, 자바라, 장구

 

<서도시나위>는 이 공연에 앞서 정가악회의 다른 공연에서 먼저 선을 보였다. 그러나 원래는 이 공연을 위해 6개월의 준비 끝에 만들어진 곡이다. 당시 부암아트홀을 메웠던 관객들 중 반 이상이 국악공연을 거의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서도시나위>가 연주된 후 앵콜이 요청되었고, 이것은 정가악회가 2000년 창단된 후 최초의 앵콜이었다. 따로이 앵콜곡을 준비하지 않았던 이유로 서도시나위의 후반부를 다시 연주했다. 서도의 음악은 국악 중에서도 가장 낯선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악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을 보며, 전통어법에 철저히 기반한 곡으로도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확신을 다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반년의 기간동안 정가악회가 정성들여 공부하고 다듬으며 스스로 만든 곡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른 창작곡들의 연주 때와는 달리 <서도시나위>를 연주하는 단원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스스로 즐기는 신명이 우러나오고 있었고, 이것이 관객에게 전해져서 모두가 동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서도시나위>는 즉흥연주의 특성상 시간적 신축성과 활용성이 뛰어나며, 춤반주에 적합하기에 이후로도 정가악회의 공연에서 종종 연주되고 있다.

  동부시나위, 제주도시나위, 북청시나위 등, 전국의 민요로 특색있는 새로운 시나위들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앞으로도 연주단체들의 다양한 '시나위 만들기'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정가악회와 김정희

 

글: 신동일

 

1. 정가악회와 김정희

 

2008년 정가악회는 김정희와 함께 1년을 보냈다. 비유적인 설명이기도 하고, 또한 실제적으로도 그렇다. 이번 공연 <겨울 하늘 기러기 날 듯>은 그 열매인 셈인데, 형식적으로는 정가악회가 작년부터 시작한 “작곡가와의 만남” 두 번째 작곡가로 김정희를 선택한 것이다.

정가악회는 매년 한 명의 작곡가를 정해서 작품을 위촉하고 그의 작품만으로 함께 공연을 만드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몇편의 음악극 작업을 비롯해 여러 차례 정가악회를 위해 작품을 썼던 작곡가 윤혜진과 함께 <절대고독으로의 비상>이라는 공연으로 2007년에 첫 번째 결과물을 내놓았다.

그리고 2008년 함께 할 두 번째 작곡가로 김정희를 선택했다. 이 선택은 상당한 의외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예외적인 설득력을 갖고 있다. 정가악회가 김정희에게 공동 작업을 제안한 사건에 대해서 먼저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2. 만남의 의미

 

첫째, 정가악회가 김정희를 선택했다는 것은, 작곡가를 선택함에 있어서 작곡가의 명성이나 국악계 내에서의 위상 등 세속적인 조건을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음악적 성과만을 고려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정가악회의 음악적 지향과 철학이 드러나는 일이다.

작곡가 겸 민요연구가인 김정희는 국악계의 변방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3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국악작곡과에 편입하여 국악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론 전공으로 바꾸어 대학원에 진학한 뒤 민요 연구에 몰두했다. 김정희는 우리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한지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거두었고, 지금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김정희의 민요 연구는 진지한 음악인들, 특히 젊은 세대의 음악인들에게 큰 관심을 얻으며 공감대를 형성할 정도로 논리정연하고 설득력을 갖고 있으나, 제도권 내에서는 아직 김정희의 연구 성과를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가악회와 김정희의 의기투합은 제도권 밖의 변방에 대한 관심, 우리 음악에 대한 진지한 자세, 형식보다 내용을 중요시하는 객관적 시각 등, 양쪽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 서로 잘 맞아떨어져 이루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둘째, 정가악회와 김정희의 공동 작업은 결과적으로 우리 음악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욕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정가악회나 김정희 모두 우리 음악의 참모습을 찾고 정리해내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자기 예술의 원천으로 삼고자 한다. 정가악회와 김정희의 만남은 우리 음악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깊이 있는 이해를 전제로 한다. 이들은 모두 전통을 바탕에 두고 현시대에 맞는 자기 음악 세계를 만들어내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이것이 정가악회와 김정희의 만남이 갖는 의미이며, 이들의 작업이 실제로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하게 하는 이유이다.

정가악회와 김정희의 결합은 단순히 “작곡가와의 만남” 시리즈의 2008년 버전에 그치지 않는다. 정가악회는 2008년 초부터 특강 형식을 빌어 김정희의 연구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매년 하고 있는 음악극 작업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함께 작업하고 있다. 특히 이번 공연 마지막 곡으로 연주될 <서도 시나위>는 작곡가 김정희의 개인 창작물이 아닌, 정가악회와 김정희가 함께 만들어낸 새로운 형식의 국악합주다. 정가악회는 그렇게 김정희와 함께 1년을 보냈다.

 

3. 원형에 대한 탐구

 

정가악회와 김정희는 각각의 음악적 지향점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정가악회는 알려져 있다시피 정가와 풍류에 자신의 음악적 중심을 두고 있다.(정가악회의 관심사가 단지 “정악”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단체의 이름이 “정가(正歌)악회”가 아닌 “정가(情歌)악회”라는 점을 비롯해서 스스로도 여러 차례 밝힌 바가 있다.) 가곡을 단지 양반들의 노래라는 인식만으로 접근하지 않고 있으며, 풍류에 대해서도 폭넓은 연구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한다. 악기마다 서로 다른 유파의 풍류 가락을 공부해서 함께 연주해 보기도 한다.

반면 김정희는 “민요”에 방점을 찍고 있다. 민요 중에서도 전문가들의 소리보다는 노동요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일반 서민들의 민요에 주로 관심을 갖고 있다. 북한을 포함하여 현재 채집되어 있는 전국의 민요를 최대한 분석, 정리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음악적 구조를 밝혀내어 자신의 창작에 반영하는 것은 물론, 한국음악의 작곡 재료로 종합하여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끔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쪽이 모두 갖고 있는 것은 우리 음악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다. 이들은 우리 음악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음악을 하는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우리가 선조로 받은 유산이 도대체 어떤 것이며, 이것을 현재에 어떤 입장에서 받아들이고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는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빠른 속도로 산업화, 서구화, 물질문명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우리 음악에 대한 연구와 학문적 성과는 충분치 않다. 대부분 서구의 이론에 우리 음악의 이런 저런 면면들을 끼워 맞추는 식이거나, 본질을 벗어난 피상적인 문제에 매달려 있기도 하다. 이론 뿐 아니라 새로운 작품 창작이나 전통음악 외의 창작곡 연주에서도 서양음악의 음악적 방법들에 얽매여 있는 경향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정가악회와 김정희의 문제의식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우리 음악을 우리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찾고, 이를 창작과 연주, 그리고 이것을 위한 이론 작업에 까지 적용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여러 학문의 영역들이 서양에서 유입되었고, 우리 사회의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이 서구 문명에 큰 영향을 받고 있지만, 최소한 우리 음악을 이해하기 위한 틀거리는 스스로 만들어내고, 좀 더 주체적인 입장에서 음악 활동을 해야 하지 않는냐는 것이다.

 

4. 서도 시나위

 

이번 공연은 북한 민요를 테마로 한 곡들로 구성되었는데, 특히 작곡가 김정희의 민요 연구 성과가 집약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정희는 북한 민요 연구를 계획하고 이론 전공으로 대학원 진학을 해서 <평안도 민요의 음조직 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김정희 민요 연구의 첫 성과물로, 북한민요선집 <북녘 땅 우리 소리>에 채록된 평안도 민요 전체를 검토, 분석한 것이다. 김정희는 이 논문에서 평안도 민요에 매우 다양한 음조직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밝혀냈고, 각각 음조직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냈다. 이것은 한반도 안에서 사용되고 있는 음조직을 대부분 아우르고 있다. 특히 서양음악의 분석 방법을 탈피해 민요에서 사용된 음들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내는 방법과 적절한 용어를 만들어 썼다는 점이 주목된다. 현재 확보할 수 있는 북한 민요 자료의 양적 한계가 있지만, 150여곡의 평안도 민요를 하나하나 검토한 결과물로 의미 있는 성과였다. 김정희는 매년 우리 민요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음악적 요소들을 주제로 꾸준히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정희는 자신의 민요 연구의 출발점이 된 북한 민요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갖고, 다양한 민요 가락들을 자신의 창작 모티브로 활용해 왔다. 그 중 중요한 작품이 2007년 <민요, 작곡마당에 서다>라는 공연에서 발표된 피리 독주곡 <아용 아용 에헤용>이다. 황해도 황남 논매는 소리를 테마로 한 이 곡은 ‘서도 피리산조’라는 새로운 컨셉으로 작곡되었다. 시나위 가락을 기본으로 하는 산조는 관습적으로 남도가락을 기초로 하여 연주되어 왔고, 태생부터 당연하게 남도 음악 문화의 전유물이었다. 김정희는 피리가 서도 소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악기라는 점에서 착안하여 서도 가락으로 연주하는 피리 산조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해 냈고, 이것은 매우 설득력 있는 아이디어였다.

김정희는 정가악회를 만나면서 ‘서도 산조’에서 더 나아가 <서도 시나위>를 구상하게 된다. 김정희는 정가악회가 봉산탈춤 반주 경험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된 후 <서도 시나위>에 대한 구체적인 착상을 하게 되었는데, <아용 아용 에헤용>이 민요를 테마로 작곡된 곡이라면, <서도 시나위>는 김정희의 감독 아래 정가악회 단원들이 실제 시나위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함께 만들어낸 임프로비제이션(improvisation;즉흥연주)이다. 물론 사전 연습을 통해 계획된 즉흥연주이며, 김정희와 정가악회의 공동 작업으로서는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주요 가락들은 서도 소리에서 따왔고, 이미 몇 차례 연주를 통해 점검 하고 수정을 거쳐 무대에 올리는 작품인 만큼 시나위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5. 계승과 발전을 위한 방법론

 

우리는 1970년대부터 꾸준히 “전통 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외쳤다. 이것은 정부의 구호일 뿐 아니라 교육계와 예술인, 심지어 운동권에서도 부르짖은 구호였지만, 실제적인 방법이 적절하게 제시된 예가 흔치 않다. 정가악회와 김정희의 우리 음악에 대한 접근 방법은 양쪽 모두 우리 전통음악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전통음악에 확고한 기반을 다지면서 현재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 음악의 계승과 발전”에 대한 모범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정가악회의 <송소고택 줄풍류> 음반은 정가악회의 지향점을 잘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가락이나 구성 면에서 풍류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으며,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새로운 특징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연주 및 녹음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돋보인다. “실제로 풍류방에서 연주하듯 전통 실내악의 울림과 연행의 현장성이 살아있는 음악, 기계로 매만져진 음향이 아니라 인간과 악기와 공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만들어낸 음악, 정가악회는 이를 위해 여러 민간 풍류를 포함, 줄풍류의 ‘꾼’으로 세상을 살다 간 풍류명인들의 흔적을 더듬어 살피고 연주했다”고 음반 해설에서 밝혔다. 전통예술을 보는 새로운 시각은 종종 신선한 경험을 가능케 한다. 특히 무분별하게 새로움을 추구하는 현대 예술 관행에 비추어 전통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오히려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 서양의 르네상스 역시 자신들의 문화 원형에 대한 새로운 탐구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던가.

민요 가락을 테마로 삼은 김정희의 일련의 작품들 역시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데, 단순히 민요를 테마로 삼은 것 뿐 아니라 전체적인 어법과 텍스추어 등에서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간다. 반면, 구성이나 악기 주법 등에서는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영역까지 나아가곤 하는데, 그의 작품은 특히 진지한 젊은 연주가드에게서 크게 호응을 얻는다. 김정희의 작품들은 전통음악의 관습을 그대로 지키면서 새로움을 더했고, 이런 면모는 종종 젊은 연주가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곤 한다.

이렇게 정가악회와 김정희의 음악적 지향이 가장 적극적으로 만나는 작품이 바로 <서도 시나위>가 아닐까 싶다. 전통을 고수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음악적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서도 시나위>는 한국음악이 나아가야할 어떤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5. 소통

 

정가악회의 김정희는 소통 방식에 있어서도 음악계의 일반적인 관념과는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이들의 작업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정가악회는 매달 자신의 연습 공간에서 작은 음악회를 연다. 20명 안팎의 청중들이 공연을 찾아온다. 공간 규모로 봤을 때 더 많은 청중이 찾아오기도 어렵고, 정가악회도 관람 인원을 제한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공연은 우리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을 만들어 준다. 멀리까지 공명된 소리를 전달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는 서양악기와 달리, 탁한 울림과 미세한 떨림이 주는 섬세한 아름다움을 전달하고자 하는 한국 악기와 목소리는 청중과 연주자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잘 전달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 음악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하려는 정가악회의 음악에 대한 진지한 자세는 다수의 대중을 의식하고 있지 않다. 소수의 청중이라도 음악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진지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깊이 있는 교감을 나누기를 원한다. 이것 역시 우리 음악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통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자세가 현대 산업 사회에서 어떻게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는 더 생각해 봐야할 문제지만, 적어도 정가악회를 정가악회답게 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김정희 역시 불특정 다수를 의식하고 작곡을 하지 않는다. 정가악회와 유사하게, 그 역시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을 히트작을 만들겠다는 의식을 하지 않고 작업을 한다. 그는 물론 전통음악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전통을 기반으로 많은 작곡가들이 창작을 하고 널리 소통되기를 희망하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대중들의 취향에 따라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전통을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하고, 전통에 기반을 둔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소수라도 이런 음악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청중과의 접촉을 확대해 나가고자 한다. 김정희에게는 당장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보다, 우리 음악의 본질을 이어받아 발전시켜 나가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6. 다시, 정가악회와 김정희

 

이번 공연 <겨울 하늘 기러기 날 듯>은 정가악회와 김정희가 1년을 함께 한 결실이다. 정가악회와 김정희의 만남은 한국음악계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도전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매년 수많은 음악가들이 배출되고 음반과 공연이 넘쳐나는 시대에 이런 음악회 하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예술도 상품화되지 않으면 존재하기 어려운 시대에, 전통음악에 단단히 뿌리 내리면서 21세기를 살아가겠다는 예술가들이 힘을 합쳤다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사건이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정가악회는 김정희와의 작업 자체로 그들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세상에 다시금 각인시킨 셈이고, 김정희는 뛰어난 연주가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 펼쳐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가악회와 김정희가 앞으로 꾸준히 함께 작업해 나갈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이 함께 만들어 낸 2008년은 서로에게 작지 않은 음악적 재산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정가악회와 만나다

김정희

 

정가악회와 만난 것은 여러 해 전의 일이지만, 함께 작업을 하면서 깊이 있게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알고 있는 정가악회는 젊은 연주단체로서는 흔치 않은 단체이다. 많은 젊은 연주단체들이 이른바 퓨젼으로 내달을 때, 정가악회는 묵묵히 전통을 고민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한편으로 전통을 내세우는 연륜 있는 연주단체들이 전통의 레퍼토리들을 반복재생할 때, 정가악회는 전통에 기반한 창작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며 꾸준히 작업해왔고, 음악의 영역에서 머물지 않고 극의 영역까지 자기 고민을 확대해 나갔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연암 박지원 선생의 말씀이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한다, 즉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연암은 당대 첫손 꼽히는 새로운 문체의 선봉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심지어 “법고하지 못하면 창신하지 말라”라고 단호히 말한다. 근본이 없는 문장은 새로운 것으로서의 가치도 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가악회는 드물게 ‘법고창신’을 실천하는 연주단체이다. 그래서 정가악회와의 만남이 더욱 뜻 깊다.

토속민요를 파고들어 연구한지 6년여가 되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매우 농축된 시간이었다. 이 시간 동안 민요의 악조와 시김새, 전조유형, 장단과 형식 등, 여태껏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한 내용들을 노래 불러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로부터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민요의 질박한 아름다움에도 더욱 깊이 심취하게 된 시간들이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처럼 토속민요를 연구하고, 그 연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곡을 써나가는 작업을 병행할 것이다.

정가악회가 북한지역의 전통음악으로 무언가 새로운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북한지역의 음악들은 민족의 반쪽에 해당하는 음악이면서 남한의 음악보다 더욱 급속히 잊어지고 사라져가고 있다. 더욱이 분단 이전의 그 음악들이 영영 사라지면 우리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할 매개도 또 하나 사라지는 것 아닌가? 서도소리꾼들 아니면 별로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북한지역의 음악에 정가악회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고마운 일이다. 북한지역 토속민요를 연구한 나와 북한지역 음악에 관심가진 정가악회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 무대에 올릴 곡은 모두 5곡인데, “기러기 날 듯”, “석양에 해는 재를 넘고”, “떼 한 장에 벼 닷 말” 이 세 곡은 초연곡이며, “서도피리산조-아용소리”는 지난해 11월 초연했던 곡이다. 여기까지는 북한의 토속민요를 바탕으로 내가 작곡한 곡이나, 마지막 곡인 “서도시나위”는 정가악회와 함께 공동창작한 곡이다. 나는 이 마지막 곡에 가장 큰 의미를 둔다. 이 곡을 만들기 위해 2개월 정도의 토론과정을 가졌고, 북한지역의 삼현육각 음원을 비롯하여 통속민요, 토속민요 등의 음원을 검토했고, 그러한 준비 끝에 또 여러 달에 걸쳐 함께 곡을 만드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늘 연주자 스스로 산조를 만들고 시나위를 만들어 연주했던 전통이 사라져감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연주자 스스로 창작하는 전통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남도의 “산조”형식과 서도의 음악적 내용을 결합하여 “서도피리산조-아용소리”를 작곡했듯, 남도의 “시나위”라는 모범이 있기에 이 형식을 빌려 서도의 “시나위”를 만드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곡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의 역할은 음원을 제공하고, 조언을 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정가악회가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그 모습은 대견하고도 아름다웠다.

이번에 발표되는 곡들이 음악적으로 뛰어난 곡들이라 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많은 이들이 발 딛지 않은 영역의 음악을 소재로 하였으며, 새로운 시도들이 있기에, 더욱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있다. 법고와 창신을 함께 고민하는 정가악회를 만나 같이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는 큰 행운이고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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