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음악도로서 첫발을 내딛었던 1998년, ‘인생은 어차피 음악이다’라는 주제로 기말리포트를 써서 제출하라던 어느 교수님의 과제를 위해 썼던 글이다. 33세에 시작한 음악공부에 열정을 쏟던 무렵이었는데, 악보를 뒤지다가 우연히 찾았다. 개인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때 음악공부를 시작하게 됐고, 그런 만큼 고민도 생각도 많았던 때이다. 10여년이나 지난 지금 읽어보니 지극히 원론적인 내용이지만, 처음으로 음악공부 시작하던 당시에는 나름대로 꽤나 진지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분히 유치한 느낌이 드는 이 주제를 유치하지 않게 쓰기 위해 고심했던 기억도 난다.
-음악의 세 분야와 삶을 견주어 봄-
음악에는 작곡・연주・감상의 세 분야가 있다. 이 세 분야의 어느 하나가 없다면 음악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 세 분야가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어서, 다른 두 분야를 염두에 두지 않고 한 분야만을 고립적으로 떼어서 할 수 없음을 뜻한다.
작곡자는 그 시대를 반영하여 자신의 영혼・철학・감정을 음을 재료로 해서 그려 나간다. 작곡자의 이러한 행위는 항상 연주자와 감상자(대중)를 고려해야 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 연주와 감상이라는 행위를 통해서만이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곡의 동기이면서 목표인 것이다.
연주자는 작곡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그것을 존중하며 자기의 방식(연주 style)으로 감상자에게 전달한다. 감상자가 가장 잘 수용(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고려해야 함은 물론이다.
감상자는 연주라는 매개를 통해서만이 작곡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 감상의 동기나 목적은 상당히 개별적이고 다양하지만, 그 행위의 결과에는 항상 보편적인 것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작곡・연주・감상이라는 이 세 가지의 행위가 해당 주체들의 직접적인 영적교감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음악의 존재방식은 곧 인간의 삶의 양식과 그대로 닮아 있다.
누구나 자기 고유의 가치관과 목표를 가지고 개별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경험・느낌이 항상 우선적이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이 실제로는 서로 얽혀서 커다란 하나의 테두리를 형성하고 있음에 나는 주목하게 된다.
엄밀한 의미에서 고립적이고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처럼, 오로지 홀로 삶을 영위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 존재의 근원과 그 의미를 자각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모습으로 삶을 가꾸어나가며 다른 사람들과 화(和)하는 인간의 삶은 작곡・연주・감상으로 통일되어 있는 음악과 흡사하지 않은가.
-삶과 음악, 그 본질과 목적에 대해-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동안 사색해본 적이 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명제이지만,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각자의 행복의 요소와 기준을 마련해놓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생을 통하여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해간다.
그것이 바로 삶의 본질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본질에 부응하는 창조적 행위의 일단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삶이 희노애락 그 자체라면 음악은 그 반영이다. 음악은 음-울림을 통하여(다른 언어적 매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영혼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그 파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효과를 가지고 느낌을 자아내면서 개인의 삶과 만인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삶을 반영하면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그것이 음악의 본질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해서 삶과 음악의 공통된 궁극적 목적은 행복을 얻고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행복-그것은 인간의 꿈이고 이상이요, 음악의 나아갈 바가 아닌가 한다.
-이상적 삶, 이상적 음악을 생각함-
내가, 우리가 엮어가야 할 이상적 삶은, 음악은 어떤 것일까? 나는 여기서 ‘나’의 개념을 어떤 범주에 두어야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본다.
‘나’는 많은 부분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독립된 존재이고, 동시에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가정적 존재이고, 학교・직장・모임 등에 소속된 사회적 존재이고, 또 민족의 일원이며 인류의 일원이다. ‘나’라는 존재는 이처럼 소아(小我)와 대아(大我)가 통일되어 있다.
小我는 大我와 떨어져 고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개개의 小我가 무시되고 말살된 大我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생각컨대 타인과 무관한 나 홀로만의 행복이란 것도 있을 수 없고, 내 개인의 행복이 배려되지 않는 전체의 행복이란 것도 허구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라는 존재가 小我와 大我의 통일이므로, 이 양자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이상적인 삶이라 결론짓고 싶다.
음악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면서도 고립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삶과 동일하다. 작곡자든 연주자든 감상자든, 누구나 자기만의 음악세계가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것에 몰두한다. 그러나 모든 예술이 그렇듯, 또 인생이 그렇듯, 자신의 주관적 세계에만 몰두하여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운 모습을 띠고 있다 해도 만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울 것이다.
음악은, 예술은, 자아도취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도취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넘어서서 만인의 영혼에 윤기를 줄 수 있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그러한 것이 진정한(이상적인) 음악, 예술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삶에 있어, 또 음악에 있어 자기를 마음껏 발휘하면서도 절제가 필요하고, 또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바람직한 삶에서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고, 좋은 음악은 또 삶에서 마음의 양식이 된다. 아름답고 좋은 음악처럼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공동체가 곧 이상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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