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僧舞)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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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문장] 11호에 실린 조지훈의 시 <승무>이다.
문화원형 백과사전에는 ‘승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춤의 하나.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본래는 지역에 따라 각기 양식과 구성을 달리하면서 그 고장의 광대(廣大)들,
특히 판소리꾼에 의해 추어져왔으나, 구체적인 것은 알려진 것이 없다. (이하 생략)
그리고 각종 국악개론서에도 승무는 ‘민속춤’이라고 나와 있다.
실제로 승려가 추는 춤은 ‘작법(作法)’ 또는 ‘식당작법(食堂作法)’이라고 하여,
범패에 맞추어 추는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 세 가지가 전승되고 있다.
즉 ‘승무’는 승려가 추는 춤이 아니라, 민간인이 추는 춤이다.
조지훈 시인은 누군가가 추는 승무를 보고 저 시를 썼고,
그 춤은 분명 승려가 아닌 민간의 춤꾼이 추었을 것이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승무를 출 일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지훈 시인이 잘못 본 것일까?
또는 알면서도 시적 자유에 의해 그렇게 묘사한 것일까?
이 시에 대한 '감상의 길잡이'(인터넷에서 쉽게 검색됨)는 다음과 같다.
-오동잎이 달빛을 받으며 떨어져 내리는 밤. 아무도 없는 빈 무대에 황촉 불을 켜 놓고 춤을 춘다.
그러므로 이 춤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춤이 아니라. 자신의 번뇌를 떨쳐 버리려는 몸짓이며,
가없는 영혼의 세계를 향한 간절한 발돋움일 터이다.
'복사꽃 고운 뺨', '까만 눈동자' 같은 관능적인 아름다움이나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라는 표현을 보면,
이토록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어찌하여 세속적인 영화를 멀리하고
승려가 되지 않을 수 없었는가 하는 것이 궁금해진다. 그러나 이 시는 그 연유를 밝히지 않는다.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이 세속은 어차피 번뇌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바탕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겠다.
(이하 생략)
나도 국어시간에 이렇게 배웠던 것 같고, 고2 내 딸도 이렇게 배우고 있다.
아마도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이렇게 배우고 있을 것이며,
나중까지도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감상의 길잡이를 작성하신 분들은 승무가 민속춤이란 걸 몰랐던 것일까?
또는 알면서도 시적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저렇게만 해설한 것일까?
시문학에서 시적 자유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저렇게 표현하고 감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된 우리문화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함께 전달하는 일도 간과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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